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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 하루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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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자리, 접대, 성희롱 ②


교장은 머리가 벗겨져 있는 50대의 남자였다. 바짝 마른 키에, 얼굴이 길쭉해서 학생들이 '마두' '말상'이라고 불렸으며 심지어 평교사들 사이에서도 사석에서 '마 교장'으로 통했다. 그런데 이 마교장은 특히 전횡이 심해서, 그런 별명으로 일컬어지는 자리에선 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적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정교사 중에서 얼마 후에 유부녀가 될 여선생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숙은 잘 몰랐지만, 점심시간에 교장실로 호출당한 그 여선생이 점심시간 한참 지나서 나왔다거나, 그럴 때마다 교직원용 화장실에서 스타킹 따위를 갈아 신더라는 말을 적이 있기는 했다.


그리고 언젠가, 숙이 두고 온 물건을 가지러 퇴근 시간이 한 시간쯤 지난 어느 날 학교에 다시 들렀을 때 교장실 문 앞에서 립스틱이 거의 지워지고 얼굴 화장도 반쯤 지워진 그 여교사가 커튼이 쳐진 교장실에서 다급히 나오는 것을 맞닥뜨리기도 했었다. 그날, 황급히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지던 그 여선생의 치마가 거의 엉덩이 부근까지 구겨져 있던 것도 숙의 기억에 아직 남아 있었다.


어쨌든 이 학교에 방음벽과 방음 커튼이 쳐진 곳 두 군데를 든다면, 그건 당연히 시청각실과 교장실이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마 교장과, 호출을 받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 교장실 앞에는, 이미 교장선생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서 있었다. 그녀들과 한 선생이 나타나자, 교장은 서두르는 듯 인사도 받지 않고 앞장섰다.


"늦겠구먼."


"괜찮습니다. 어차피 모두 승용차편으로 움직일 거니까요."


그 말에 갑자기 마 교장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돌아섰다. 여선생들은 그가 무언가를 잊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는 대신 그녀들 한명 한명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것이었다. 마치 무슨 몸매 검사라도 하듯이.


"됐군!"


마 교장은 알듯 모를 말을 남기고 기사가 대기하고 있는 자신의 중형 승용차에 올랐다. 숙과 그녀들은 한 선생을 따라 그가 모는 자가용에 탔다.


숙은 한 선생의 차 안에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한 선생의 옆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았기에, 뒷좌석에 끼어 탄 여선생들은 마치 이 시간에 출근하는 여자들이고, 앞자리 한 선생은 꼭 보도방 실장처럼 보였다.


그들이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교외의 별장식 일식집이었다. 근사한 중형차와 외제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첫눈에도 있어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그들이 한복을 곱게 입은 여종업원의 뒤를 따라 이리저리 꼬인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조명이 은은하고 긴 테이블이 있는 방이었는데, 숙과 그녀들은 약간 난감했다.


세 사람 모두 치마를 입고 있어서, 그나마 숙은 플레어스커트였기에 망정이지 정장 스타일의 타이트스커트를 입고 있는 은과 청치마를 입은 희에겐, 이런 장소는 본의 아니게 얌전히 무릎을 모으고 다소곳이 앉을 수밖에 없는, 구두를 벗고 앉아야 하는 방석이 깔린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마 교장과 한 선생은 먼저 들어가 자리에 앉으려 했다. 마 교장이 안쪽에 자리를 잡자, 갑자기 한 선생이 곁에 있던 미술 교사인 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눈치가 빠른 그녀는 서둘러 마 교장에게 다가가 등 뒤에서 웃옷을 벗겨서 옷걸이에 걸었다. 그걸 보고 한 선생이 은근히 숙에게 눈짓 했으나, 그녀는 짐짓 무시하고 교장선생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선생은 멋쩍은 표정으로 직접 윗도리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허허…. 이 아가씨들이…. 우리가 지금 소개팅하는 건가요?"


교장과 한 선생의 맞은편에 쪼르르 몰려 앉아 있던 그녀들은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와중에 그녀들은 방금 주임 선생이 무슨 무슨 선생님 대신 아가씨라고 불렀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은이는 교장선생님 곁으로 오고, 희는 그냥 거기 앉아 있어요. 그리고 숙, 숙이는 여기 내 옆으로 오지."


숙은 기가 막혔다.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한 선생의 호칭과 말투가 싹 바뀐 것이다. 누구누구 선생님 대신 이제 아예 반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장이 안쪽 자리에 떡하니 앉아 있으니, 항의할 엄두도 못 냈다. 숙은 욕지거리가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잠자코 고개를 숙인 체 아랫입술을 깨물며 참아야만 했다.


잠시 후에 웨이터의 안내로 미닫이문이 열리더니, 드디어 오늘의 주객이 나타났다. 첫눈에도 고위 공무원으로 보이는, 반쯤 흰머리를 기름으로 넘긴 땅딸막한 체구의 회색 정장 차림 남자였다. 마 교장보다는 두세 살어려 보였지만, 마 교장을 포함해 그들 전원이 일제히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장을 제외한 전원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오자마자 마 교장과 한 선생은 안중에도 없는 듯이, 허리 굽혀 인사하는 여선생들을 한 명씩 훑어보고 있었다.


"아이고, 이게 다 웬 미인들이야?"


"어서 오십시오. 교육관님."


"어이쿠, 교장님, 오래간만이외다!"


숙은 지나친 호들갑을 부리는 그에게서 역겨움을 느꼈지만, 함부로 내색할 수 없었다. 교육관이라는 작자는 마치 예상했었다는 듯, 희가 조심스레 겉옷을 받아 들자 다시 한번 희의 용모를 아래위로 훑더니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자, 앉읍시다, 다들 앉아요."


의례적인 인사말이 세 남자 사이에서 오갔다. 그 사이에 방의 미닫이문이 열리더니 커다란 회 접시와 요리들이 진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주전자에 담긴 고급술이 몇 병 올려졌다.


마지막 접시가 놓이기 무섭게 한 선생의 눈이 희번덕이며, 마 교장 옆에 앉은 은과 맞은편 교육관 옆에 자리한 희에게 재빨리 신호를 보냈다. 눈치를 챈 은이 맞은편의 교육관에게 술을 권했다. 희도 그제야 엉거주춤 마 교장의 잔을 채웠다.


"자, 먼저 잔이나 부딪칩시다!"


숙은 한 선생이 자신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것을 알아차리고 마지못해 주전자를 들어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그는 함께 건배하면서도 보이지 않게 계속 숙의 어깨를 건드렸다. 분위기를 맞추라는 사인인 것 같았다. 


이미, 은과 희는 그들이 잔을 놓자 바로 안줏감과 횟점들을 마 교장과 교육관의 개인 접시 위에 가져다 놓고 있었다. 숙 역시 그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별수 없이 한 선생의 안주을 집어 주었다.


그렇게 술이 몇 순배 돌고, 세 남자는 별로 우습지도 않은 화제에 짐짓 허우대를 흔들며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들도 시답잖지만, 함께 웃는 척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 순간, 숙은 손짓을 섞어가며 말을 마친 교육관이 옆에 앉은 희의 허벅지를 철썩 치며 웃어젖히는 모습을 보고 은근히 놀랐다. 철썩하는 맨살을 때리는 소리가 꽤 크게 났으나, 방 안의 모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비록 테이블 아래쪽으로 가려지긴 했으나, 그의 손이 필경 드러나 있을 그녀의 무릎 위에 계속 얹어진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급작스러운 광경에 숙은 희의 표정을 살폈으나, 뜻밖에도 미처 느끼지 못했는지 그녀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더 큰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에…."


당황한 그녀는 마 교장의 시중을 드는 은의 쪽 상황도 곁눈질로 보았다.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 교장의 한쪽 팔도 분명 테이블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그때, 한 선생이 부족해진 술을 더 시키기 위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갔다. 순간 숙은 드러난 마 교장과 은의 모습을 보고 숨을 들이마셨다.


짧은 타이트스커트이기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거의 허벅지 중간 이상까지 끌어당겨진 치마 아래로 드러난 은의 매끈한 양 허벅지 사이에 마 교장의 손이 거리낌 없이 들어선 체 허벅지 안쪽을 주물러 대고 있었다.


의외의 광경에 너무 놀란 숙은 행여 자기가 쳐다보고 있는 것을 들킬까 봐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얼굴이 귀밑까지 달아올랐다. 그것은, 민망한 광경을 목격했음에도, 마치 그들이 자신의 허벅지를 주무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교육관과 마 교장은 아무런 일도 않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테이블 위로는 술잔을 돌려가며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한 선생도 이런 광경을 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그는 모른 척을 하고 있다. 이런 나쁜….


그때였다. 숙도 무릎에서 뭔가 감촉이 느껴졌다. 한 선생의 손이다. 식탁 위로는 열심히 이쪽저쪽 귀 기울이며 분위기 맞추기에 열을 올리면서도, 식탁 아래쪽으로 은밀한 수작을 벌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숙은 침착하게, 다른 사람이 눈치 못 채도록 손을 테이블 아래로 가져가 그의 손을 자신의 무릎 위에서 밀쳐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 한 선생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를 세게 꼬집은 것이었다.


꽤 따끔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웃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오늘 그녀들의 임무는 분명 분위기를 깨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이런 상황이었으니, 어쩌면, 희와 은의 표정 관리도 이해할 법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조금 이상했다. 그녀들은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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